저야 주는 데로 받아먹어서 좋은 줄 몰랐는데, 마침 시중에서 계란을 먹어보고 나니 맛이 아주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이런 귀한 걸 주시다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
맛은 우선적으로 아~~ 주 고소하고 담백합니다. 다른 계란과는 맛을 비유할게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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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효능!
1) 청계란의 껍질은 일반 계란보다 껍질이 두꺼워 미생물이 잘 침투하지 않아 신선도가 뛰어나다. 2) 파란 알은 오메가3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5대 고영양 소가 함유되어 있다. 3) 중성지방 분해 효과와 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 개선과 위장장애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4) 콜레스테롤을 낮춰줌과 동시에 영양의 균형을 잡아주며 루테인 성분은 눈의 피로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B.C. 4C 이전에는 성탄절이 없었다. 다만 2세기 때 1월 6일 ‘신현절’이라 하여 이날을 예수의 나신 날과 세례 받으신 것을 겸하여 지금의 성탄절로 지켰다. 1월6일은 그리스도가 동방 박사들에게 나타난 것, 예수가 세례받을때 아버지와 성령이 나타나신 것, 주님이 가나에서 처음 행하신 이적 등을 기념하여 325년에는 전 교회 대부분이 성탄절로 지켜오던 것을 353∼354년경 교황 리베리어스가 1월 6일을 신현절 혹은 세례 절로, 12월 25일을 성탄절이라 하여 예수 탄생의 날로 공식 발표하여 로마에서 이를 지키기 시작한 후 동교회에서도 동조했다.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Christmas,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 로마 역사에서 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B.C.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12월 25일 일까?
첫 번째로 가장 유력한 12월 25 일설은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짓날을 채택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 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B.C. 4C 후반부터이다. 고대 로마교회에서 기원한 크리스마스를 지키기 시작한 년대에 대해서는 335년 설과 354년 설이 맞서 있다. 성탄일은 그 후 동방교회로 퍼져나가 ‘콘스탄티노 롤리스(379년)’, ‘카파도 기아(382년)’등에서 지키기 시작했고 교회력의 기원이 됐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력 기원의 시원이 되었다. 로마의 액시그누스(500-544)가 533년 부활절 표를 작성할 때 계산한 데서 비롯된 시력 기원의 기점인 그리스도의 탄생은 실제로는 현재보다 4년이 앞당겨진다. 성서에는 예수님의 탄생 연도나 날짜의 기록이 전혀 없다.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한 최고의 기록이라는 안디옥 주교의 데오 필로스 기록(175-183)도 학자들 간에는 위작이라고 단정되고 있다.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구성된 용어인 ‘크리스마스’ 사건에 관한 성서적 근거로는 마태복음 제1장과 누가복음 제2장을 들 수 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천사의 고지, 이상한 별의 출현, 베들레헴의 말 구유까지 박사들을 인도한 빛 등은 ‘그리스도’가 인간이 된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를 사는 모든 성실한 종교개혁의 후예들, 정통 신앙의 말씀 중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
두 번째로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초기 그리스도 교도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이라는 로마 이교도들의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일 거라는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교도의 축제는 밤이 점점 길어지던 날이 끝나고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다. 이런 동지에 관한 풍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국마다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12월 22일을 동지라 하여 팥죽을 쑤어 문설주에 바르고 먹는 등 악귀를 물리치려는 척사의 관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의 한 겨울에 벌이던 태양 의식이 그리스도 탄생 기념과 합쳐서 생겨났다는 설들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또한 다른 학설도 전해지는데, 로마교회에서는 원래부터 12월 25일을, 동교회에서는 1월 6일을 각각 성탄절로 지켰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후대에 동·서교회가 모두 같은 날로 지키게 되었다. 알마니아 교회에서는 아직까지도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킨다고 한다.
로마 교회
로마에서는 4세기에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결정하고 이어서 1월 6일을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현현일 (Epiphany)로 기념하였다. 예수의 세례 기념일은 1월 6일로부터 옥타브가 되는 다음 주 같은 날로 연기하여 지키는데 이날에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정도로 기억할 뿐 특별한 행사는 없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것은 주후 274년 Aurelian 로마 황제에 의하여 된 일이다. 북구라파에서는 이전부터 "태양이 다시 소생"하는 동지를 크게 기념하는 축제를 전통적으로 지켜 왔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이다.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과 기독교에서 "세상의 빛"이 탄생한 날을 12월 25일로 결정한 것은 이교도들의 "태양의 빛"과 기독교의 "세상의 빛"을 일치시킴으로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 더욱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그 시대를 기록한 력기를 보면 주후 336년 전에 이상과 같이 결정해서 지킨 것을 알 수 있고, 이날(12월 25일)을 교회력의 첫날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집트
이집트에는 희랍의 철학, 동양의 신비주의, 기독교의 교리 등을 종합하여 얻은 "인간의 지식에 의하여 인간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그노시스(Gnostics)라고 하는 기독교의 이단 집단이 있었다. 약 200년경에 Clement (Clement of Alexandria)가 1월 10일 (일부 사람들은 1월 6일 이라고도 함)을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는 날로 지켰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집트에서 1월 6일을 교회의 축일로 정한 것은 그노시스 교도 보다 2세기 후인 380년에서 400년 사이에 결정된 일이다. 이집트에서는 이 날을 예수의 탄생일 겸 세례 기념일로 지켰다고 그 무렵 이집트를 방문한 John Cassian이 기록하고 있다.
동방교회
동방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특정일로 정해서 지키기 시작한 것은 380년 Constantinople에서 비롯되었고, Antioch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계속 반대해 왔었다. 동 로마제국에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1월 6일을 현현일로 명확하게 분리하여 지키게 된 것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 결정한 이후 432년부터 이다.
예루살렘과 아르메니아
예루살렘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계속 부정해 오다가 6세기 이후부터 1월 6일과 12월 25일로 분리하여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Armenia 지방의 교회에서는 1월 6일에 성탄절을 지키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 때문에 1월 6일 현현일을 "작은 크리스마스"(Little Christmas) 또는 "구 크리스마스"(Old Christmas)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개신교회에서도 현현일을 지킬 수 있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방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같은 날 천사들에 의하여 "기쁜 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방문(눅 2:11)도 겸하여 경축하고 동시에 성경에는 동방박사가 언제 찾아왔는지 확실한 날짜는 밝히지 않았지만 동방박사의 경배도 아울러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탄생과 목자만을 기억하고 동방박사의 경배는 현현일에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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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풍습
크리스마스와 함께 오래도록 지켜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이 있다. 촛불예배라든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간 열매가 달린 초록색 담장(Holly)이라든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마구간 등이 그것이다. 이들 관습의 많은 부분이 비기독교적인 요소가 많다. 이것은 본래 12월 25일이 이교도의 축제일인데 이것을 기독교의 축일로 바꾸었기 때문에 이교도의 전통과 관습이 기독교의 관습에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장작
고대 Scandinavia에서는 동짓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큰 화로에 불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다. 이것은 동지까지 해가 짧아지다가 이 날로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여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태양이 없는 겨울울 지내는 북극지방의 사람들에게 태양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일이다. 이 전통이 영국에 와서는 큰 장작(크리스마스 장작 또는 Yule log)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벽난로(fire-place)에서 불을 붙여 밤새도록 태워 방도 따뜻하게 하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도 돋우는 풍습으로 전해져 왔다.
크리스마스실
본래 씰은 크리스마스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 덴마크에서 어린이를 위한 병원을 건축하던 중, 기금이 모자라게 되었다. 관계자들은 건축기금의 조달을 여러 모로 생각하다가, '우표를 사고 그 거스름 돈으로 어린이 병원을 세우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이 운동에 참여하였고, 우체국에서는 우표를 살 때 내어 주는 거스름 돈 액수에 해당하는 종이조각을 별도로 제공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표와 이 조각을 함께 붙여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 운동이 미국으로 건너오자, 미국의 결핵퇴치에 종사하는 이들이 이것을 결핵퇴치 기금의 모금방법으로 활용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우표를 붙일 때 아주 작은 돈을 결핵퇴치 운동에 보탠다는 뜻에서 씰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성탄 카드에 붙인 이 크리스마스실은 미국에서 유럽으로 퍼졌고, 오늘낱에는 적십자사에서 주관하여 적십자운동을 하는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실을 붙인다.
촛불예배
예수는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복음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참 빛이시며... 그 빛이 어둠에 비치니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주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자정 촛불 미사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빛"되신 예수가 이 세상에 빛으로 등장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개신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자정 촛불예배를 별로 지키지 않는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이외에 촛불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경우는 고난주간의 세족 목요일 저녁예배이다. 이 경우의 촛불예배는 크리스마스의 경우와는 정 반대이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가 죽으심으로 밝았던 세상이 다시 어두워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칠언을 한 마디씩 읽고 명상하든가 또는 합창단이 노래하고 나면 촛불을 하나식 꺼 나가는 것으로 명상이 계속돼 는 동안 촛불은 둘셋넷... 꺼져 종국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왕촛대의 불만 남기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예배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개 신교회 중에서 는 새문안 교회가 매년 크리스마스와 세족 목요일에 촛불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촛불예배는 1982년에, 고난 음악 촛불예배는 1983년에 필자가 시작한 것이다.
상록 담장 넝쿨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를 파란 담장 넝쿨로 장식하고, 또 그렇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받는다. 이와 같은 풍습은 북유럽의 비기독교인들의 전통이 역시 영국에 전해진 것이다. 아리안 인종의 한 분파로 Ireland와 Wales 및 Scotland에 사는 켈트족과 독 일족들은 동짓날 축제 때가 되면 상록 담장 넝쿨을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숭배했었다.
이 식물을 숭배하게 된 이유는 태양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질 때 쓰신 가시 면류관이 담장 넝쿨로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담장 넝쿨은 본래 흰 열매를 맺는 식물이었는데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의 머리에 눌러 씌움으로 예수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나와 빨간 열매로 변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마스 때 담장 넝쿨로 화환을 만들어 교회와 집 문에 붙이는 관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면류관의 상징이다.
크리스마스트리 (Christmas tree)
중세기 초, 독일의 한 가정에서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서 선물을 만들어 주었다. 이 집은 가난했던 까닭에 어머니는 밤새 종이나 나뭇가지 따위로 인형, 집, 별, 종, 교회당의 모형 따위를 만들어서 집안에 있던 전나무에 걸어두었다.
그런데 그 밤에 거미 한 마리가 전나무에 숨어 있다가 거미줄을 잔뜩 쳤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미줄이 종이 및 나뭇가지로 만든 모형들 위로 둘렸는데, 햇살에 반짝거리고 있어서 꼭 금실, 은실로 두른 것 같았다.
"얘들아, 기뻐하자.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기 천사들이 금실과 은실을 뿌리고 갔단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독일 지역의 여러 교회로 퍼졌고, 오늘날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는 유래가 되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뚱뚱하고 배가 불룩할 뿐 아니라 기분 좋게 웃는 흰 수염이 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4세기에 소아시아 지방의 조교로 있었던 좋은 일을 많이 행한 성 니콜라스(St. Nicholas)를 의미한다고 한다. 선물을 나누어 주는 산타클로스의 풍습은 성 니콜라스가 평상시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나누어 준 것을 기념하는 관습이다.
처음엔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이 구라파에 전해졌고, 그것이 화란 사람들에게 까지 전해졌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미국으로 이민해 감으로써 미국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배달하면서 "호! 호! 호!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즐겁게 외치는데, 이것은 미국작가 Washington Irving이 싼타클로스를 항상 웃는 즐거운 인물로 묘사한 {Visit from St. Nicholas}를 1822년 Clement Moore가 작곡 함으로("T'was the Night before Christmas") 시작 되었다. 싼타클로스가 흰 털이 달린 빨간 옷과 검은 벧트를 두르고 긴 고깔모자를 쓴 모습은 미국 만화가 Thomas Nast가 1863년에 그린 만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로마에서 쌔터날리아로 지키는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는 흥겹게 지내는 계절이었다. 이때는 집안을 상록수나 상록 담장 넝쿨, 그리고 촛불로 장식을 하고 선물을 어린이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종들에게 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와 같은 풍습이 크리스마스에 까지 영향을 미쳐 오늘날도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또한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찾아와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드린 것을 본받아 기독교인들 간에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생겼을 것이다.
마구간의 설치
크리스마스 때 한국의 개신교회 중에서 마구간을 만들어 전시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그러나 명동 성당에 가면 마굿간이 해마다 설치됨을 본다. 거기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옆에는 요셉이 서 있고, 양과 짐승들도 있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엄숙하게 경배를 드리고 있다. 교인들은 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간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마굿간을 구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마구간은 13세기 아씨씨의 성 프랜시스(St. Francis of Assisi)가 처음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 프랜시스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경축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도 권장하였다. 여기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 카드
19세기 중엽에, 영국의 박물관장이었던 코올은 크리스마스 때가 되자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 틈이 없어 호슬리라는 화가에게 크리스마스 인사장에 대신할 만한 그림을 인쇄한 카드를 주문하였다.
호슬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아기 예수 나심에 대한 기록들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는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서 축배를 올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모습들의 그림을 그렸다.
코올은 단순히 편지 대신에 크리스마스 인사로 그림이 삽입된 카드를 보냈는데, 이것은 순식간에 영국의 상류사회에 새로운 크리스마스 관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유래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선냄비는 그 첫 종소리를 울리게 되었다.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던 한 구세군 사관(조셉 맥피 정위)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그는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다리를 놓아 거리에 내걸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 국솥을 끊게 합시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사관의 깊은 마음이 오늘날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실시하게 되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날 모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모든 이들에게 이웃사랑의 절실한 필요성을 되살려 주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 준섭(조셉 바아) 사관이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 이웃 돕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의 전통과 관습 중에서 가장 즐겁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캐럴을 부르는 것일 것이다. 캐럴은 본래 불란서 말 carole에서 온 말로 주로 중세 불란서에서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圓舞)를 일컫던 말이었다. 이 원무는 동지때 가졌던 축제에서 사용한 이교도들의 무곡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캐롤은 춤출 때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어서 캐럴이 모두 크리스마스와 반드시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그 음악 이 캐럴인지 아닌지는 곡의 가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
그 곡에 버든(Burden)이라고 불리는 후렴이 각 절의 가사 끝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했는데 이것을 형식으로 보면 B, V1, B, V2,... B의 형식이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개롤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캐럴은 우리가 현재 아는 바 대로 크리스마스 노래만을 한정해서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 시대의 캐롤은 다양하게 써져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캐럴이 동정녀 마리아, 아기 예수, 등을 주제로 한 연유로 크리스마스 노래인것 같으나 실상은 부활절 캐롤도 있고, 고난절, 승천일, 성령강림 주일,... 등등 1년 교회력의 모든 절기에 맞는 캐롤이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판한 {The Oxford Book of Carols}에 보면 모든 절기에 맞는 캐럴 200여 곡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캐럴이 라틴어와 영어 두 언어를 섞어 쓰고 있는 것이 캐럴의 또 다른 특색이다. "저들 밖에... 노엘, 노엘, " "천사 찬송하기를... 글로리아(영광), " 등은 좋은 예이다. 15 세기에 있어서 캐럴은 대중적인 종교 가곡이었고, 불란서의 론도(rondeau), 비렐레이 (virelai), 발라드 (ballade)와 견줄 수 있는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고정된 음악 형식이었다.
캐럴 음악의 중요성은 그 음악의 화성에 있지 않고 선율과 리듬에 있다. 일반적으로 캐럴은 즐거운 노래로 된 것이 특징이고 대중에게 많이 불려지도록 되어 있다. 캐롤은 본래 교회의 절기 때마다 부르는 모든 노래를 일컬었지만, 특별히 크리스마스 노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독일에서는 바이 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로 Christmas eve song이란 뜻이고, 불란서에서는 노엘(No l)이라고 한다. 노엘이란 말은 영국으로 건너와서 노웰(Nowell)이라 불려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길거리 어디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럴 노랫소리가 듣기 어렵네요...^^ 참 신나는데...